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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없는 결혼은 한 번이면 충분했다제1화

이 화는 약 2752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전생에서 민윤희는 마치 유령처럼 존재감 없는 남편과 살았다.

아이를 낳던 날에도 남편 이정호는 곁에 없었다.

과다 출혈로 몇 번이나 의식을 잃으면서도 민윤희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끝내 돌아온 것은 연결되지 않는 통화음뿐이었다.

의료진이 몇 번이고 이름을 부르며 그녀의 정신을 붙들었고, 민윤희는 떨리는 손으로 응급 수술 동의서에 제 이름을 적어야 했다.

아이가 열이 나서 40도까지 오르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이정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민윤희는 홀로 아이를 품에 안고 응급실로 뛰어갔다.

사흘 밤낮을 뜬눈으로 버티다 끝내 기력이 다해 병원 복도에 쓰러졌다.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날에도,

그는 여전히 곁에 없었다.

차갑게 식은 부모님의 유골함을 품에 안고 돌아온 민윤희에게 큰아버지는 다짜고짜 뺨부터 올려붙였다.

남편 마음 하나 붙잡지 못한 탓에, 평생 체면을 지키며 살아온 부모가 사위의 마지막 배웅조차 받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며 몰아세웠다.

죽어서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할 거라는 모진 말까지 덧붙였다.

그리고 쉰여덟이 되던 해.

말기 암을 선고받은 민윤희의 삶도... 마침내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 * *

요양보호사가 민윤희에게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창밖의 잎 마른 오동나무를 바라보던 민윤희는 희미하게 남은 기대를 끌어모아 이정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실수로 연결된 듯했다.

수화기 너머로 한동안 소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다급하게 재촉하는 두 아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빠, 케이크 다 먹으면 아진 이모랑 우리 넷이 가족사진 찍자.]

“그래.”

민윤희의 가슴 깊숙한 곳이 쿡 찔렸다. 손에서 미끄러진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이 깨졌다.

끝없는 절망 속에서 민윤희는 바닷속 깊이 침잠하는 외로운 배처럼 눈을 감았다.

...

다시 눈을 떴을 때, 민윤희는 27살로 돌아와 있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이혼 조정 합의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그다음에는 그 서류를 들고 남편의 잊지 못한 첫사랑, 임아진을 찾아갔다.

“이정호와 이혼하기로 했어요.”

민윤희는 아무런 동요도 없이 합의서를 탁자 위에 놓았다.

“이정호에게 이 서류에 서명만 받아 주면, HT그룹 안주인 자리는 임아진 씨 거예요.”

임아진의 눈에 당혹감이 스쳤다.

“정호와 결혼한 지 7년이나 됐고 아이도 둘이잖아요. 정말 그 자리를 나한테 넘길 수 있어요?”

민윤희의 머릿속에 전생에서 겪었던 참혹한 기억들이 지나갔다.

민윤희는 담담하게 답했다.

“이정호는 아직 임아진 씨를 잊지 못했고, 아이들도 임아진 씨를 더 좋아해요. 내가 물러나면 모두가 원하는 대로 되겠죠.”

마침 민윤희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자 아들 이재준과 딸 이우희의 찢어질 듯한 울음이 쏟아졌다.

[엄마, 빨리 와서 살려줘!]

[나쁜 아저씨가 우리를 때려죽이려고 해. 으아앙...]

곧이어 납치범의 싸늘한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아이 둘 다 내 손에 있어! 살리고 싶으면 20억 원을 준비해. 안 그러면 내가...]

“그럼 죽여요.”

납치범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민윤희는 전화를 끊었다.

지켜보던 임아진의 표정이 굳었다.

“재준이랑 우희가 살려 달라고 한 것 같은데, 구하러 안 가요?”

민윤희의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장난 전화예요.”

전생의 민윤희는 아이들이 납치됐다는 말을 듣고도 집안의 돈줄을 쥔 이정호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사정한 끝에 가까스로 20억 원을 마련했다.

약속 장소로 차를 몰고 가는 동안 아이들 걱정에 정신을 놓은 탓에 가드레일까지 들이받았다. 이마가 터져 피가 흐를 정도였다.

하지만 끝에 가서 알게 된 진실은... 납치극은 두 아이가 직접 꾸민 자작극이었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그런 짓을 벌인 이유는 민윤희에게서 20억 원을 받아 임아진의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서였다.

이번에는 같은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민윤희는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온 민윤희는 며칠 동안 이정호와 두 아이를 위해 뜨던 목도리와 미리 준비해 둔 크리스마스 선물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들을 남김없이 쓰레기통에 버렸다.

민윤희와 이정호의 결혼은 집안끼리 맺은 정략결혼이었다.

임아진은 이정호가 평생 놓지 못한 첫사랑이었다.

두 사람은 한때 결혼을 약속할 만큼 가까웠다.

하지만 임아진의 부모가 운영하는 LB그룹이 비자금 조성과 불법 자금 거래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자, 이정호의 부모는 집안의 배경을 문제 삼아 두 사람의 교제를 강제로 끝냈다.

그 뒤 임아진은 유학을 떠났고, 이정호는 반년 내내 폐인처럼 지냈다.

그제야 이정호는 민씨 집안과의 정략결혼을 받아들였다.

결혼식 날, 이정호는 딱딱한 목소리로 못 박았다.

“우리는 집안끼리 필요해서 맺어진 사이야. HT그룹 안주인이라는 자리 말고는 아무것도 줄 수 없어.”

민윤희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철없는 기대가 남아 있었다.

사람 마음은 정성을 들이면 움직인다고 믿었다.

더 많이 베풀고 더 오래 참으면 얼음장 같은 결혼도 언젠가는 따뜻해질 줄 알았다.

그래서 이정호가 좋아하는 음식을 배웠고, 셔츠를 때마다 미리 한 장 한 장 다려 두었으며, 남편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모조리 외웠다.

하지만 이정호가 민윤희에게 내준 것은 일주일에 한 번, 의무처럼 갖는 잠자리뿐이었다. 마음만큼은 한 번도 민윤희를 향하지 않았다.

메시지에 답하지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았으며, 민윤희는 물론 그녀와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 하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임아진이 돌아온 뒤에는 미련을 끊지 못한 채 두 아이까지 데리고 임아진과 더 가까워졌다.

삶을 다시 얻은 지금... 민윤희는 사랑 없는 결혼에 제 인생을 또다시 묻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뒤에서 묵직한 발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이정호의 서늘하고 거리감 어린 목소리가 꽂혔다.

“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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