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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혈통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제1화

이 화는 약 2995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자산가와 약혼하던 당일이었다.

아버지는 하객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내 아들놈이 예전에 인터넷 성인 방송 모델을 하던 애입니다. 영상마다 파트너가 바뀌곤 했죠. 이제야 설거지해 줄 호구를 잡았네요.”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때 혜원이 나를 자기 등 뒤로 숨기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버님, 아무리 농담이라도 선을 넘으셨어요. 다시는 이런 말씀 하지 마세요.”

식장 소동이 끝나고, 아버지는 내게 사과했다.

“그 여자가 너를 정말 사랑하는지, 그 마음의 깊이를 시험해 보려던 것뿐이다.”

하지만 결혼식 전날 밤, 나는 아버지가 차려준 밥을 먹고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동생의 여자친구와 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신랑을 데리러 왔던 혜원은 그 처참한 광경을 보고 눈시울을 붉혔다.

“아버님이 하신 말씀이 전부 사실이었네.”

동생 역시 눈물을 흘리며 제 여자친구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

“형이랑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결국 그날의 주인공은 내가 아닌 동생이 되었다.

동생의 여자친구는 내 살결이 닿았던 옷을 전부 불태우며 소리쳤다.

“너처럼 비열한 인간은 살면서 처음 봐. 감히 동생의 여자까지 탐내다니!”

나는 피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바라보았지만, 아버지는 미동조차 없이 차갑게 속삭였다.

“네 동생이 그 집안의 사위로 더 어울린다.”

그로부터 이십 년 뒤, 새로운 시대의 자산가로 우뚝 선 내게 딸아이가 남자친구를 데려왔다.

“아빠, 보시고 마음에 드시면 저희 약혼할게요.”

나는 동생과 소름 끼칠 정도로 똑같이 생긴 청년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마음에 안 드는구나.”

* * *

“마음에 안 든다”는 내 한마디가 식장에 낮게 깔렸다.

연회장에 모인 모든 이들의 움직임이 일순간 멎었다.

어머니의 성을 따라 ‘신’ 씨가 된 동생의 아들, 태오.

버클리 음대를 우수하게 졸업한 인재.

183센티미터의 훤칠한 키에 탄탄한 체격.

아버지는 이름만 대면 아는 명망 높은 인사이고, 어머니는 한때 업계를 주름잡았던 자산가.

심지어 할아버지는 국내외에서 칭송받는 자선가다.

내 딸 유라마저 당황한 듯 눈동자를 굴렸다.

“아빠…… 전에 태오 이야기했을 때는 좋게 생각하셨잖아요.”

“그때는 얼굴을 보지 못했고, 지금은 보았으니까.”

장내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동생의 우월한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태오의 외모는 대학 시절에도 늘 화제였다고 들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거절이라는 것을 경험해 보지 못했을 얼굴이었다.

청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버님, 제가 예의가 없었거나 옷차림이 단정치 못했나요? 지적해 주시면 바로 고치겠습니다!”

“고칠 필요 없다.”

나는 찻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너는 평생 우리 집안의 문턱을 넘을 수 없을 테니까.”

하객 중 한 명이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서준 씨, 태오 할아버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모르시나 본데, 평생을 남을 돕는 데 헌신하신 훌륭한 자선가입니다.”

“맞습니다. 그 훌륭한 가문에서 자란 아이니 인품은 걱정하실 필요가 없어요.”

한순간 실소가 터져 나올 뻔했다.

아버지는 내 동생의 자식마저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포장해 주며 키운 모양이었다.

유라가 미심쩍은 눈빛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아빠…… 태오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거예요?”

“아이의 잘못이 아니다.”

나는 무심하게 대꾸했다.

그러자 태오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대체 왜요! 무슨 권리로 저를 밀어내시는 겁니까! 제가 부족한 점이 있다면 말씀을 하셔야죠! 무작정 안 된다고만 하시면, 저는…… 저는……”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너는, 뭐?”

“인정할 수 없습니다!”

나는 차갑게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이 집안의 유일한 결정권자다. 내 사위를 고르는 일에, 굳이 네 승인을 받아가며 이유를 설명해야 하느냐?”

“당신……!”

태오는 분노로 부들부들 떨며 연회장 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육중한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나는 흐트러짐 없이 차를 마셨다. 연회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계속되었다. 내 구역에서 굳이 내 심기를 거스를 사람은 없었다.

유라는 내 손에 자라 늘 내 결정을 존중해 주던 아이였다.

“아빠, 혹시 저 사람이 아빠 마음에 걸리는 짓이라도 한 적이 있다면 마음 쓰지 마세요. 건강 상하세요.”

나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회가 끝날 무렵, 거칠게 문이 열리며 낯익은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여기 한서준이 누구야!”

이십 년 전, 나는 가족과 모든 인연을 끊고 이름마저 바꿨다.

내 앞에 나타난 동생 동민은 세월이 흘렀어도 예전 그대로였다. 머리는 단정하게 빗겨 넘겼고, 얼굴에는 중년의 중후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나를 마주한 순간, 동민은 마치 망치로 얻어맞은 듯 제자리에 굳어 버렸다.

그리고 몇 초 뒤, 실소 섞인 웃음을 흘렸다.

“유라의 아버지가…… 형이었어?”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형,” 동민의 눈빛에 지독한 조롱이 서렸다.

“이십 년 동안 결혼도 안 하고 살았다고 들었는데, 숨겨둔 자식까지 있었던 거야?”

“볼일이 무엇입니까?”

그제야 정신이 든 동민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태오가 집에 와서 눈물만 흘리고 있어.”

“그렇습니까.”

“형은 스스로가 얼마나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거야?”

“글쎄요.”

동민이 나를 쏘아보았다.

“나한테 지고 나니까, 이제는 아무 죄도 없는 내 자식한테 화풀이하는 거야?”

나는 대답 대신 가벼운 미소만 지어 보였다.

“서준아.”

동민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자산가가 되었다고 해서 세상 모든 걸 네 멋대로 할 수 있을 거라 착각하지 마. 잊었나 본데, 내 아내 역시 한때 업계를 주름잡던 자산가였고, 태오의 할아버지이자 내 아버지는 전 국민의 존경을 받는 분이셔.”

나는 상석에 기댄 채 차분하게 응수했다.

“그래서요? 온 가족이 합세해서 남의 집 혼사까지 이래라저래라 하시겠다는 겁니까?”

“내가……”

동민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저 주제를 알라고 충고하러 온 것뿐이다!”

“내 연회장에 무단으로 침입해 제 자식을 억지로 밀어 넣으려는 자가 누구인데, 감히 주제를 논하십니까?”

내 눈빛이 싸늘하게 식자, 동민은 입술을 짓씹었다. 아내와 아버지의 그늘 아래서 평생을 대접받으며 살아온 그였기에 이런 굴욕은 익숙지 않았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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