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아이를 되찾았다제1화
이 화는 약 2361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남편의 소꿉친구인 유민하에게는 이른바 '천진난만 솔직병'이라는 기묘한 고질병이 있었다.
그 애는 나와 처음 만난 날에도, 지독히도 때 묻지 않은 천사 같은 표정으로 내게 이렇게 물었다.
“소윤 언니, 서준 오빠랑 결혼하기 전엔 남자친구 몇 명이나 사귀어 봤어요? 임신은 몇 번이나 해봤고요? 솔직하게 다 말해줘야 해요.”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내게 남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속삭였다.
“민하가 아직 마음이 여리고 애 같아서 그래. 악의 없이 그냥 생각나는 대로 솔직하게 말하는 것뿐이니까 너무 마음에 두지 마.”
절박한 심정으로 입원해 유산 방지 주사를 맞고 있을 때도, 그 애는 굳이 버블티 한 잔을 사 들고 병실로 찾아와 내 배를 뚫어지게 노려보며 속삭였다.
“민하가 인터넷에서 봤는데요, 낙태를 많이 한 여자들은 아기가 잘 안 들어선대요. 소윤 언니가 솔직하지 못하게 낙태 사실을 숨기고 서준 오빠랑 결혼한 게 분명해요.”
남편의 안색이 순간 굳어졌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병원에서 고통스러운 산고 끝에 아들을 낳았을 때, 민하는 기다렸다는 듯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애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갓 태어난 아기의 얼굴을 가리켰다.
“서준 오빠, 두 사람 다 외꺼풀인데 이 아기는 왜 쌍꺼풀이 있어요?”
“역시 소윤 언니는 정직하지 못해요. 오빠를 속이고 딴 남자 아기를 낳은 게 틀림없어요.”
그 모욕을 더는 견딜 수 없었던 나는 그 자리에서 친자 확인 검사를 요구했다.
하지만 며칠 뒤 나온 결과는 참담했다. 아기는 정말로 남편의 핏줄이 아니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린 내게 남편은 짐승처럼 달려들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친정엄마조차 내 따귀를 올려붙이며 너 같은 화냥년은 우리 딸이 아니라며 병원 밖으로 나를 내팽개쳤다.
혼미해진 정신으로 도로를 헤매다 트럭에 치여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나는 억울함에 피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아기를 품에 안고 퇴원을 준비하던 바로 그날로 돌아와 있었다.
……
* * *
“서준 오빠, 민하가 학교 생물 시간에 배웠는데요.”
“외꺼풀인 사람 둘이 만나면 절대로 쌍꺼풀 아기가 태어날 수 없대요.”
“그러니까 이 아기는 소윤 언니가 딴 남자랑 낳아온 거예요. 오빠한테 거짓말한 거라고요.”
하얀 병실 안, 겉싸개에 싸인 아기를 품에 안고 퇴원을 준비하던 내 귓가로 익숙하고 기괴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남편 한서준의 소꿉친구인 유민하가 프릴이 가득한 로리타 원피스를 입고 핑크색 토끼 인형을 품에 안은 채, 세상에서 가장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쫑알거리고 있었다.
시어머니의 안색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하더니, 내 팔을 부서질 듯 움켜쥐었다. 살 속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손톱 자국이 선명했다.
“임소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
살을 에는 듯한 생생한 통증.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다시 살아 돌아왔음을.
전생에서도 바로 이 순간이었다. 민하가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뱉어낸 그 가벼운 주둥이질 한 번에, 축제 분위기였던 병실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했었다.
흥분한 시어머니는 앞뒤 재지도 않고 내 따귀를 갈겼다.
“상스러운 년! 어쩐지 낳아놓고 보니 우리 서준이를 눈곱만큼도 안 닮았다 했더니, 기어이 밖에서 딴놈 씨를 배어와 우리 집안을 망치려 들어?!”
남편 한서준 역시 배신감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포효했다.
“임소윤, 내가 너한테 어떻게 해줬는데! 감히 나한테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의 아이를 안겨?”
민하는 한쪽 구석에 서서 손가락으로 제 뺨을 톡톡 치며 혀를 끌끌 찼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소윤 언니는 다 큰 어른이면서 왜 이렇게 정직하질 못할까? 민하처럼 솔직해야 착한 사람이지.”
서준과 만난 이후, 내 세상에는 서준 외엔 그 어떤 남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눈먼 인간들은 저 사악하고 얄팍한 계집애의 말 한마디에 나를 더러운 창녀로 몰아세웠다.
전생의 나는 억울함에 미칠 것 같아 그 자리에서 친자 검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검사 결과, 아기는 분명 내 아이가 맞았지만 서준과는 단 1%의 유전적 연관성도 없다는 판정이 나왔다.
그 충격적인 검사 결과지 앞에서 나는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친정엄마마저 나를 믿어주지 않았다. 내 머리채를 휘잡아 병원 벽면에 사정없이 짓찧으며 저주를 퍼부었다.
“미친 년! 내가 어쩌다 너 같은 걸 낳아서 평생 쌓아온 집안 안팎의 체면을 다 깎아 먹느냐! 당장 한강물에 빠져 죽어라, 이 년아!”
엄마는 내 팔을 끌고 내려가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으로 나를 던져버렸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파 아무런 사고도 할 수 없었던 그때, 나는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는 덤프트럭의 불빛을 보았다.
하지만 이번 생은 다르다. 나는 이미 모든 진실을 알고 있다.
나는 품 안의 아기를 억척스럽게 시어머니의 품에 던지듯 안겨주었다. 그리고 신속하게 침대 머리맡에 놓인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켜 구도를 잡은 뒤, 민하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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