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면 새로운 계절이 온다제3화
이 화는 약 2067자. 본 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는 3화 미리 읽기 중 마지막 화입니다. 이어지는 제4화부터는 공식 앱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병실 안의 사람들은 일제히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오직 소지윤만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서유리에게 쏠렸다.
다들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흥미진진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서유리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 해.”
“정말요?”
소지윤은 기쁨을 참지 못하고 주영훈의 품에 와락 안겨들었다.
“영훈 씨, 나 정말 영훈 씨랑 결혼하는 거야? 나중에 다시 이혼한다고 해도 난 상관없어. 한 번이라도 영훈 씨 아내가 될 수 있다면 난 그걸로 충분해.”
“유리야, 정말 고마워.”
주영훈의 감격스러운 눈빛을 마주하자 서유리가 피식 웃었다.
“고마워할 거 없어. 당연한 일인걸.”
“세상에, 사모님 진짜 대인배 아니야? 어떻게 내연녀한테 본처 자리를 내줘?”
“내가 저 여자 뱃속의 아이였다면 차라리 태어나기 싫었을걸. 저렇게 줏대 없는 엄마라니, 너무 창피하잖아.”
직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에도 서유리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혼 합의서 준비해서 줘. 서명할 테니까.”
서유리가 미련 없이 돌아서려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핸드폰이 울렸다.
[서유리 환자분 맞으신가요? 임신중절 수술 일정이 오후 3시로 잡혔습니다. 지금 바로 병원으로 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네. 지금 바로 갈게요.”
[남편분도 같이 오시나요?]
“남편은 없습니다.”
통화를 마치자 주영훈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물었다.
“방금 누구랑 통화한 거야? 어딜 가는데? 그리고 남편이 없다니? 눈앞에 있는 난 뭔데?”
“곧 바뀔 신분에 미리 적응 좀 하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서유리는 빙긋 웃었다.
“당신 아내나 잘 챙겨. 난 이만 가볼 테니까.”
서유리의 가시 돋친 말에 주영훈은 가슴 한구석이 꽉 막히는 듯했다.
조금의 미련도 없이 멀어지는 서유리의 뒷모습을 바라보자 불쾌감이 치밀어 올랐다.
서유리를 쫓아가려던 그때, 소지윤이 몰래 아기를 꼬집었다.
“응애!”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자, 주영훈은 다급히 발걸음을 돌려서 아이를 달래야 했다.
병실 밖으로 나온 서유리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쳐내고 곧장 진료실로 향했다.
‘주영훈. 똑똑히 기억해. 오늘 일은 전부 네가 자초한 거니까, 절대 후회하지 마.’
수술을 기다리는 동안 서지호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한 달 뒤 출국하는 비행기 티켓을 예매해 뒀으니, 얼른 와서 얼굴이나 보자는 내용이었다.
비행기 티켓 예매 내역을 확인하자, 답답했던 가슴이 그나마 조금 풀리는 듯했다.
핸드폰을 집어넣으려던 순간, 소지윤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여러 장의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는 주영훈과 소지윤이 한 침대에 누워 있었고, 그 사이에는 갓난아기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주영훈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소지윤의 얼굴에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행복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누가 봐도 애틋하고 완벽한 세 식구의 모습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저 행복은 오롯이 서유리의 것이어야 했다.
심장이 날카롭게 베인 듯 쓰라렸다.
서유리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아가야... 미안해.”
[서유리. 사실 영훈 씨는 진작에 너한테 질렸어. 꿈에도 몰랐겠지만, 그동안 당신을 안지 않았던 건 침대에서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래.]
[네가 너무 재미없게 굴어서 싫증 났다나? 난 너랑 다르거든. 장소가 어디든 당신이 원하는 대로 맞춰줄 수 있으니까.]
[그래도 참 고마워. 네가 아니었으면 내가 어떻게 감히 사모님 자리에 앉아 봤겠어.]
쉴 새 없이 울려 대는 메시지 알림에도 서유리는 평온한 표정으로 화면만 내려다봤다.
그때 간호사가 들어와 서유리를 불렀다.
“서유리 환자분. 이제 수술 들어갈게요.”
“네.”
서유리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크게 심호흡한 뒤 간호사를 따라 수술실로 향했다.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운 서유리는 의사의 안내에 따라 자세를 잡았다.
극심한 공포에 온몸이 떨렸다.
잔뜩 긴장한 모습을 본 마취과 의사가 부드럽게 다독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금방 끝날 거고, 아프지도 않을 겁니다.”
싸늘한 바늘 끝이 피부를 파고들었다.
이내 의식이 아득하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차가운 수술 기구가 몸에 닿는 순간, 기어이 참았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미안해, 아가야. 다음에는 꼭 좋은 부모를 만나서 태어나.’
‘너도, 엄마도... 다음에는 꼭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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