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끝, 재가 된 혼약제1화
이 화는 약 1871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칠 년 전, 내 약혼자는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공주와 헤어지기 싫어 화친을 위해 백령국으로 시집가는 길에 직접 호위로 나섰다.
그 뒤로 해마다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첫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난영이가 백령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어. 난영이가 혼례를 마치면 도성으로 돌아가 너와 혼인할게."
이듬해에는 이런 사연을 늘어놓았다.
"난영이가 아이를 가졌는데, 입덧이 심해 잠도 못 자. 아이를 낳을 때까지만 곁을 지켜 주고 도성으로 돌아가 혼인할게."
삼 년째에는 이 말뿐이었다.
"의지할 데 없는 난영이 모자가 너무 가엾어."
그 뒤로 몇 년 동안은 짤막한 한마디만 적혀 있었다.
"연서야, 조금만 더 기다려 줘."
그가 도성을 떠난 지 칠 년째 되던 해, 일곱 번째 편지도 어김없이 도착했다.
"연서야, 백령국 군주가 세상을 떠났어. 내가 공주를 호위해 도성으로 돌아갈 거야. 이제야 너를 정식으로 맞아들일 수 있겠구나."
마지막 눈물까지 쏟아 냈다.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일곱 통의 편지와 혼인 서약서를 직접 태웠다.
"어머니, 최서겸과의 혼인은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어머니께서 정해 주신 분께 시집가겠습니다."
'최서겸, 이번에는 내가 너를 버리는 거야.'
* * *
"연서야, 나 돌아왔어!"
하인들에게 붉은 비단을 걸라 이르던 중, 익숙하면서도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이 굳었다. 손에 쥐고 있던 비단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끝내 눈시울이 젖었다.
칠 년 만에 만난 서겸은 소년 시절의 풋기를 벗고 있었다. 꼿꼿이 선 모습이 한결 의젓했다.
곁에 부녀자의 차림으로 서 있는 이는 칠 년 전 화친을 위해 시집간 공주, 서난영이었다.
서겸은 예닐곱 살쯤 된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는데, 그 눈매와 인상이 어쩐지 서겸을 닮아 있었다.
아이가 미간을 찌푸리며 서겸을 올려다보았다.
"아버지, 이 사람이 도성에 두고 오신 약혼녀입니까? 울상인 얼굴이라 저는 싫습니다."
멍해진 사이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서겸의 눈에 당혹감이 스쳤다. 곧바로 해명이 이어졌다.
"연서야, 오해하지 마. 승원이는 난영이와 백령국 군주 사이에서 난 아이야. 나를 잘 따르는데 얼마 전에 아버지까지 여의었잖아. 그래서 마음을 달래 주려고 아버지라 부르게 한 것뿐이야."
눈물을 꾹 삼키고 입꼬리를 올렸다. 가슴 한쪽이 쓰렸다.
"오해 안 했어. 공주께서는 막 돌아오셨으니 궁에 먼저 드셔야 할 텐데, 우리 집에는 무슨 일로 왔어?"
냉랭한 말투를 알아챘는지 서겸의 눈에 다시 당혹감이 스쳤다.
"이미 궁에 들러 황제 폐하께 문안드렸어."
아이의 손을 놓은 그가 성큼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거칠고 따뜻한 손바닥. 칠 년 동안 한 번도 누리지 못했던 다정함이었다.
"연서야, 나를 기다리느라 칠 년 동안 온갖 소문에 시달렸겠지. 나 때문에 많이 서러웠을 거야."
"폐하께서 내가 공주를 지킨 공을 헤아려 특별히 은혜를 베푸셨어. 우리가 혼인하면 네게 정2품의 품계를 내려 주신대."
다급히 말을 잇는 목소리에 조심스러운 불안이 묻어났다.
"동주(東珠: 북방에서 나는 진주)로 장식한 봉관도 청해 두었어! 나라가 세워진 이래 첩에게 이런 은혜가 내려진 건 네가 처음이야."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첩? 누가 첩이라는 거야?"
서겸의 말이 뚝 끊겼다.
낯빛이 어두워진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듯했다.
뒤에 서 있던 아이가 제 어머니의 자리를 지키려는 듯 목청을 높였다.
"아바마마께서 돌아가신 뒤 어마마마께서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은류강에 몸을 던지셨어. 다행히 아버지가 뛰어들어 구해 주셨지. 그런데 물살이 워낙 거세서, 어마마마를 구해 뭍으로 올라오셨을 때는 옷이 대부분 떠내려가 두 분 다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하셨대."
"우리 백령국에서는 남녀가 맨살을 맞대면 혼인을 해야 해. 그래서 나와 어마마마도 아버지를 따라 도성으로 온 거야. 아까 외조부이신 폐하께서 두 분의 혼인을 허락하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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