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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시간은 흘러간다제3화

이 화는 약 2217자. 본 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는 3화 미리 읽기 중 마지막 화입니다. 이어지는 제4화부터는 공식 앱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예서야!”

송지욱이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해 보니 오늘 엄마의 안색이 평소보다 훨씬 좋았다.

엄마는 내게 갓 깎은 사과를 건네며 기대에 찬 얼굴로 물었다.

“예서야, 혼인신고 했지? 사진도 찍는다더니 예쁘게 찍었어? 어서 엄마한테 보여줘 봐.”

순간 숨이 막히고 코끝이 찡했다.

엄마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차마 진실을 알게 할 수는 없었다.

내가 겨우 용기를 내어 솔직하게 털어놓으려는 순간, 송지욱이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송지욱은 침대 옆에 앉더니 늘 그랬듯이 자연스럽게 우리 엄마를 마사지해 주면서 나지막하게 웃으며 말했다.

“예서가 사진이 안 예쁘게 나왔다고 사진관에 다시 보정해서 보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리고 혼인신고는 이틀 뒤쯤에 하려고요. 혼인신고 하게 되면 꼭 알려드릴게요, 장모님.”

갑자기 장모님이라는 호칭에 우리 엄마는 감동해서 눈시울을 붉혔다. 그래서인지 우리 둘 사이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어두운 표정으로 송지욱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내가 빠져줬잖아. 그런데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송지욱은 예전처럼 다정한 손길로 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나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예서야, 우리 12년 동안 만났잖아. 정말 나랑 헤어질 수 있어? 아쉽지 않겠어?”

아쉽다고 해서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

송지욱은 이미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되었는데 말이다.

나는 빨개진 눈으로 송지욱을 노려보며 차갑게 비웃음을 흘렸다.

“아쉽든 아쉽지 않든 정리해야 하는 건 맞지.”

내가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 하자 송지욱이 몸을 틀어 내 앞길을 막아섰다.

송지욱은 내 어깨를 잡더니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나를 꽉 끌어안았다.

“하지만 난 너랑 헤어지고 싶지 않아.”

송지욱이 너무 세게 끌어안은 탓에 아무리 밀어내려고 해도 그의 품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대학교 때 너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 주려고 카페에서 일을 하다가 민하를 알게 되었어.”

“민하는 낯을 많이 가리는 애라서 말할 때면 늘 얼굴이 빨갰어. 항상 양아치 같은 애들한테 괴롭힘당했는데 내가 자주 도와줬어.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됐어.”

“한 번은 흑심을 품은 손님이 약을 탄 적이 있어. 내가 바에 뛰어 들어가서 구해 줬는데, 그때 민하가 내게 먼저 입을 맞췄어. 나도 참지 못하고 그만...”

“민하와의 관계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어. 하지만 민하도 잘못은 없잖아. 그래서 양심 때문에 차마 민하에게 상처를 줄 수가 없었어. 그래서 책임을 지려고 했어.”

“그동안 민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내 곁에 있어 줬어. 울지도 않고, 소란을 벌인 적도 없고, 내게 뭘 요구한 적도 없어. 나는 민하한테 미안한 게 너무 많아. 그래서 혼인신고로 보상해 줘야 해.”

12년과 8년은 단순히 겹쳐 있던 숫자가 아니었다.

내가 다이아몬드 반지를 들고 바보처럼 웃고 있을 때 송지욱은 다른 여자와 몸을 섞었다.

내가 월세방에서 송지욱이 가장 좋아하는 갈비찜을 만들어 놓고 그가 집에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송지욱은 다른 여자가 끓여 준 라면을 먹었다.

내가 행복해했던 그 수많은 순간이 사실은 배신당했던 순간들이었다.

“그만해. 나는 너희가 어쩌다가 붙어먹었는지 듣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꺼져!”

나는 울면서 송지욱의 어깨를 깨물었다.

곧 입안에서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송지욱은 아파서 몸을 파르르 떨면서도 저항하지 않았다.

송지욱은 통증을 참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비록 혼인신고는 민하랑 했지만 민하가 가진 거, 너한테도 다 줄 거야.”

“사랑, 돈, 함께하는 시간, 그리고 어머님에 대한 내 효심도 민하랑 결혼했다고 해서 줄어들거나 하지 않을 거야.”

“참, 최근에 해외에서 위암 말기 환자에게 굉장히 효과적인 치료제가 나왔대. 예서야, 우리 언제 어머님 모시고 같이 치료받으러 갈까?”

나는 무기력하게 눈을 감았다. 더 이상 송지욱을 깨물지도 않았다.

그동안 송지욱은 내게 정말 잘해줬다.

최민하라는 존재만 없었다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였을 것이다.

송지욱은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가격을 따지지 않고 뭐든 사주었다.

내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은 일을 미루는 한이 있더라도 꼭 같이 가줬다.

엄마가 병에 걸린 뒤로는 직접 우리 엄마를 돌봐주기도 했고, 밤늦게까지 의사와 함께 치료 방법을 의논하기도 했다.

비싼 치료비 역시 줄곧 송지욱이 부담해 왔다.

그래서 나는 송지욱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적어도 엄마가 다 나을 때까지는 송지욱을 떠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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