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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시간은 흘러간다제1화

이 화는 약 2282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단옷날, 나와 혼인신고를 하기로 약속했던 남자 친구가 갑자기 잠적했다.

밤이 되어서야 나는 SNS에서 남자 친구가 실수로 올린 듯한 게시물을 발견했다.

[스무 살부터 스물여덟 살까지. 우리의 청춘도 이제는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네.]

그 글과 함께 혼인신고서와 두 사람이 같이 찍은 사진이 게시되어 있었다.

사진 속 낯선 여자는 송지욱의 어깨에 다정하게 기댄 채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분노에 휩싸인 채 댓글 창을 눌러 따져 물으려던 순간, 내 절친 정채린이 남긴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결혼하는 거야? 정말 축하해. 드디어 온갖 난관을 이겨내고 결혼하는구나!]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덜덜 떨면서 정채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침묵하던 정채린이 마침내 진실을 얘기해 주었다.

“맞아. 사실 두 사람은 8년 전부터 사귀고 있었어. 나 말고도 다들 알고 있던 사실이야.”

“일부러 숨긴 건 아니야. 속이 좁은 네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난리 칠까 봐 그랬어.”

“솔직히 민하랑 지욱이가 더 잘 어울려. 그리고 두 사람이 여기까지 오는 것도 쉽지 않았어. 같은 여자로서 굳이 민하를 힘들게 하지는 마. 좀 착하게 살아.”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차갑게 식은 눈물이 오히려 뜨거운 불길처럼 가슴을 파고들었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진실을 알게 되었다. 나와 송지욱이 12년을 함께하는 동안, 송지욱은 무려 8년을 다른 여자와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주변의 모든 사람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한패가 되어 나를 속이고 있었다.

* * *

나는 자신을 괴롭히듯 계속해서 댓글 창을 들여다봤다.

내 절친 정채린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하나같이 축하하고 있었다.

[민하는 정말 좋은 여자야. 민하를 속상하게 한다면 내가 제일 먼저 너를 가만 안 둘 거야!]

댓글을 남긴 사람은 송지욱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지난주에 만났을 때만 해도 나를 형수님이라고 부르며 살갑게 굴렀던 사람이다.

[가장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다니, 정말 축하해. 오늘 밤에는 같이 먹고 죽자!]

그 댓글을 남긴 사람은 나와 같이 2층 침대를 썼던 룸메이트였다.

[다 같이 모이는 건 좋은데 내 동생과 민하의 행복을 위해 다들 입단속 잘하도록 해. 절대 걔가 알게 해서는 안 돼.]

그 댓글은 송지욱의 누나가 남긴 것이었다. 몇 년 전 사업을 시작하겠다며 내게서 2천만 원을 빌려 달라고 했고, 자신이 인정하는 제수씨는 나뿐이라고 했던 사람이다.

[당연한 거 아니에요? 공주님과 왕자님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절대 그 마녀가 이 사실을 알게 해서는 안 되죠. 걱정하지 말아요!]

그건 송지욱의 회사에 새로 들어온 어린 비서가 남긴 댓글이었다.

눈치가 없고 어리숙한 편이라 몇 번이나 해고될 뻔했지만, 내가 좋은 말을 많이 해 주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꼭 알아야 할 것들을 하나하나 가르쳐 준 덕분에 무사히 인턴 기간을 마칠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젖히며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았다.

송지욱이 다른 여자와 8년 동안 만났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는데 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그 사실을 내게 숨겼다.

나는 그들의 대화에서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는 사람이었고, 왕자와 공주의 행복을 망치려는 마녀였으며, 그들에게는 한낱 웃음거리였다.

휴대폰을 새로고침 하자 송지욱의 게시글이 갑자기 화면에서 사라졌다.

다음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하루 종일 연락이 두절됐던 송지욱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미안해. 오늘 회사에 갑자기 일이 터지는 바람에 업무를 처리하느라 지금까지 휴대폰을 볼 시간조차 없었어.”

“요즘 회사 일 때문에 너무 바빠서 혼인신고는 잠시 뒤로 미루자.”

“참, 오늘 SNS에서 뭐 재미있는 글 못 봤어?”

송지욱은 약간 긴장한 목소리로 서툴게 나를 떠보려고 했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너는 오늘 내 전화 계속 안 받았잖아. 그리고 나는 병원에서 엄마를 돌보느라 SNS를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어.”

“일단 일부터 봐. 혼인신고 관련해서는... 다음에 너 시간 있을 때 다시 얘기하자.”

작년에 우리 엄마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의사 말로는 길어봤자 3년이라고 했다.

우리 엄마의 유일한 소망이 내가 서른이 되기 전에 송지욱과 혼인신고를 하는 것이었다.

오늘은 단오이자 나의 서른 번째 생일이었다.

우리 엄마는 아직도 병실에서 내가 혼인신고를 마치고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더 이상 엄마의 마지막 소망을 이뤄줄 수가 없었다.

송지욱이 이미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구석진 곳에 쭈그리고 앉은 채 몸을 한껏 웅크렸다.

눈물이 화면 위로 쏟아져 내려 검은 글씨가 번졌다.

나는 화면을 닦은 뒤 그들이 축하 파티를 벌이기로 한 장소를 확인했다.

[골든 레스토랑 3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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