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내가 난관결찰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었어요제3화
이 화는 약 1514자. 본 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는 3화 미리 읽기 중 마지막 화입니다. 이어지는 제4화부터는 공식 앱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밸런타인데이였던 그날 밤, 은수는 외박했다.
나는 반차를 내고 변호사를 만나 이혼 합의서를 작성한 뒤 회사로 향했다. 그리고 은수의 대표실 문을 열고 곧장 들어갔다.
넓은 가죽 의자에 앉아 있는 은수의 안색은 무척이나 좋아 보였다. 목에 두른 실크 스카프 틈새로 가려지지 않은 붉은 흔적들이 눈에 밟혔다.
숨이 턱 막혀왔고, 가슴속 깊은 곳이 여전히 쓰라리게 저려왔다.
"별일 없으면 찾아오지 말라고 했……"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뱉던 그녀가 무언가 생각난 듯 표정을 바꾸며 책상 위의 작은 선물 상자를 가리켰다.
"어제 밸런타인데이인데 내가 정신이 없어서 깜빡했어. 늦었지만 이거 받아."
멍하니 상자를 열어보니 안에는 심플한 머그잔 하나가 들어 있었다.
최근 그녀가 태오를 위해 그 브랜드에서 수억 원을 썼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 컵은 그저 일정 금액 이상 구매 시 주는 사은품에 불과했다.
실소가 흘러나왔다. 고작 이런 보잘것없는 물건에 일말의 기대를 품었던 내 자신이 한없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은수는 내 굳은 표정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곧바로 다른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사인해. 업무 인수인계서야."
하얀 종이 위에 선명히 박힌 타이틀은 내가 가진 총괄 본부장 직위를 내려놓으라는 명령이었다.
그리고 그 직위를 이어받을 후임자의 이름은 강태오였다.
황당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서류를 책상 위에 툭 던졌다.
"고작 고등학교 졸업장에 업계 경력도 전혀 없는 기사 놈한테 아르누보의 총괄 본부장 자리를 넘기겠다고? 수백억 원짜리 프로젝트를 그 자식한테 맡기겠다는 거야?"
은수는 즉시 얼굴을 굳히며 손바닥으로 책상을 거칠게 내리쳤다.
"서윤재, 말조심해! 태오는 집안 사정이 어려워 대학을 못 갔을 뿐이야. 너보다 머리도 좋고 젊으니 훨씬 더 잘 해낼 거라 확신해! 넌 그저 속이 좁아서 그 애를 질투하는 것뿐이잖아!"
"그래, 영리하긴 하겠지. 영리하지 않고서야 여자 대표의 침대로 기어 들어가는 게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겠어?"
나는 차갑게 받아쳤다.
"네가 그놈한테 퍼부어준 돈은 그냥 길 가던 개한테 밥값 준 셈 칠 수 있어. 하지만 아르누보에 그 자식 손때가 타는 건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용납 못 해!"
분노한 은수가 책상 위의 유리 액자를 들어 내게 던졌다. 고개를 숙여 간신히 피하자, 액자가 바닥에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깨진 유리 파편 사이로 사진 속 우리의 얼굴이 어지럽게 찢겨 나갔다.
"태오 모욕하지 마! 서윤재, 정말 역겨워 죽겠어!"
"회사에 너처럼 오만하고 이기적인 사람은 필요 없어. 오늘부로 대기발령이야! 당장 내 방에서 나가!"
바닥에 어지럽게 널브러진 유리 조각들을 보며, 문득 우리의 결혼 생활이 떠올랐다.
이렇게 넝마주이처럼 찢겨버린 관계를 대체 무엇을 위해 붙잡고 있었던 걸까.
나는 인수인계 서류를 챙겨 들고, 품 안에서 미리 준비해 둔 다른 서류 봉투를 꺼내 그녀의 앞에 놓았다.
"본부장 자리는 기꺼이 넘겨주지."
"네가 여기에 서명하면, 나도 인수인계서에 사인하겠어."
은수는 싸늘한 눈빛으로 서류를 내려다보다가, 순간 멈칫했다.
"이혼 합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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