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상처만 남은 우리제1화
이 화는 약 2026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결혼식을 보름 앞둔 어느 날, 강하진과 나는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
모든 것은 강하진이 던진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
“희선이 시험관 시술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 감정이 들어가는 일은 아니야. 그냥 의학적인 도움을 주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
남자의 담담한 목소리와는 달리, 내 심장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말이 돼? 결혼을 보름 앞두고 다른 여자랑 아이를 만들겠다는 게?”
“희선이는 내 스승님의 딸이야. 스승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손주를 보고 싶어 하셔. 희선이는 혼자선 어렵대. 나만 도와주면 돼.”
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를 바라보다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대단하다, 진짜. 그래, 너한텐 별거 아닐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난 널 내 남편으로 생각하고 있었어. 넌 결혼을 앞두고도 내 기분 따위는 전혀 신경 안 쓰잖아.”
쾅!
문을 세게 닫고 나가버린 강하진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핸드폰을 꺼내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올렸다.
[보름 뒤 결혼하는데 신랑 바꾸고 싶네. 신청할 사람?]
* * *
나는 소파에 앉아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친구들이 남긴 댓글 대부분이 장난스러웠다.
그럴 만도 하지. 누가 모르겠는가? 내가 강하진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나 자신을 잃을 정도로 사랑했다는 걸.
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이제 막 결실을 맺으려던 순간, 내가 그를 떠나기로 했다는 사실을.
나는 하진을 3년 동안 쫓아다녔고, 마침내 내가 생각하는 가장 완벽한 결말을 맞이했다. 그의 여자친구가 되었고, 스물일곱 번째 생일에는 하진의 청혼까지 받았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오랜 세월 동안의 노력이 보답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진은 내게 차디찬 현실을 안겨주었다.
하진은 다른 여자와 아이를 가질 거라고 했다. 나는 대범한 사람이 아니지만, 너무 비굴하게 사랑한 탓에, 하진은 내가 내 약혼자를 다른 사람에게 내줄 수 있을 만큼 관대한 사람이라고 착각했다.
멍하니 소파에 앉아 있을 때, 갑자기 울린 벨소리가 적막한 공간을 깨트렸다. 오랜만에 걸려 온 전화, 발신자는 백시언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와 시언은 소꿉친구였다. 어린 시절, 늘 그의 뒤를 따라다녔고 사람들은 나를 보고 백시언 딸랑구라고 불렀다.
시언은 성격이 냉담해서 늘 낯가림이 심한 고고한 존재라고 평가받았지만, 나만큼은 그렇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시언은 말수가 적었고, 내가 쓸데없는 이야기로 떠들어도 한결같이 들어주었다.
수능이 끝난 후, 시언은 B시로 갔고 나는 H시로 향했다. 그리고 그 후, 나는 하진을 만났다.
하진을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사랑했고, 그를 쫓아다니느라 몇 년 동안 고향인 J시로 돌아간 적도 없었다. 그래서 시언의 전화를 받았을 때, 다소 의외였다.
아직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는 그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전해졌다.
[그 말이 사실이야?]
“뭐라고?”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깨닫고는 벽에 걸린 사진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하진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래, 사실이야.”
그는 가볍게 웃었는데, 목소리에도 왠지 모를 흥미가 담겨 있었다.
[정말로 네가 괜찮다면, 나와 결혼하는 건 어때?]
열려 있던 베란다 문 틈새로 바람이 불어왔다. 미처 걸지 못한 얇은 커튼이 휘날리며 벽 구석의 파라다이스 플랜트를 덮었다.
“좋아, 그런데 조건이 뭐야?”
시언은 변호사였지만, 그 집안은 대대로 사업을 해온 집안이었다. 그렇기에 시언 또한 비즈니스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을 터였다. 그러니 나는 그가 아무런 의도 없이 나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고 믿지 않았다.
[내일 혼전 계약서를 보낼게.]
역시나, 시언이 손해 보는 거래를 할 리 없었다.
[그리고 하나 더. 박인주, 내 연락처를 남편으로 저장해 줘.]
나는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확인했다. 확실히 그의 이름은 백시언으로 저장되어 있었다.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시언이 어쩌다 이렇게 변한 건지,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인주야, 이건 네가 새로운 삶을 향해 내딛는 첫걸음이야.]
시언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내 연애가 엉망이란 걸, 그리고 내가 시언을 단지 이 지독한 사랑에서 벗어나기 위한 구명줄로 여긴다는 것도.
“그 밖에 또 다른 조건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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