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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녀는 내 목숨값을 치렀다제1화

이 화는 약 2224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엄마는 치매를 앓고 계신다. 그래서 늘 나와 언니를 헷갈려하셨다. 언니가 집에 돈을 빌려 갈 때면, 엄마는 가계부에 내 이름을 적어두었다. 내가 선물한 안마의자 사진을 SNS에 올리며 언니가 효녀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픈 엄마를 배려해 나는 늘 묵묵히 참아왔다.

이번 어버이날에도 사건이 터졌다. 내가 선물한 금팔찌를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 언니가 사준 것이라 말했다. 친척들이 댓글로 "연우 씨는 뭘 해드렸나요?" 하고 웃으며 묻자, 엄마는 지난 세월 언니가 빌려 간 차용증을 댓글로 올렸다.

[자, 여기 사천만 원 미상환 내역이야. 아직 한 푼도 안 갚았지.]

내가 억울해 해명하려던 찰나, 고개를 들어 마주친 엄마의 눈동자 속에는 묘한 비웃음이 서려 있었다.

순간, 어젯밤 우연히 들었던 엄마와 언니의 대화가 머릿속을 스쳤다.

"그 아파트 계약하고 싶은데, 잔금이 사천만 원 모자라요."

"걱정 마라. 그 돈, 네 동생이 내게 해줄 테니까!"

그제야 깨달았다. 치매라는 병은 그저 엄마의 지독한 편애를 감추기 위한 가면일 뿐이었다는 것을.

멍하니 서 있는 내 눈앞으로, 엄마는 미리 준비해 둔 계좌번호를 불쑥 내밀었다.

"일시불로 보낼래, 할부로 할래?"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묵묵히 스마트폰을 꺼내 송금 버튼을 눌렀다.

그 돈과 함께, 20년 넘게 이어온 모녀간의 인연도 깨끗이 정리되었다.

……

* * *

송금 확인을 누른 순간, 언니의 휴대전화에서 알림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KB국민은행 입금금액: 40,000,000원, 잔액...]

언니의 눈빛이 순식간에 반짝이더니, 고개를 들어 엄마와 빠르게 눈빛을 교환했다. 한쪽은 환희로 가득했고, 다른 한쪽은 한없이 다정한 눈빛이었다.

내가 빤히 쳐다보자, 엄마는 찔리는지 헛기침을 해댔다.

"네 언니가 그동안 집안일을 얼마나 많이 도왔는데. 이 돈은 언니의 효도에 대한 포상이라고 생각하거라. 불만 없지?"

나는 나직하게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불만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따져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어릴 때부터 엄마는 나와 언니를 늘 헷갈려했다. 언니가 꼴찌를 했을 때, 전교 1등인 내 머리채를 잡고 흠씬 두들겨 팬 것도 엄마였다. 생활비가 필요하다고 사정한 것은 나였는데, 정작 돈은 언니 계좌로 들어갔다.

그럴 때면 엄마는 늘 눈물을 글썽이며 내게 사과했다. "미안하다, 연우야. 엄마가 이 몹쓸 병 때문에 너희 자매를 자꾸 헷갈려하는구나."

자책하는 엄마를 보기 괴로워, 나는 늘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반성했다. 내가 아직 부족해서 엄마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거라고.

그래서 더 이 악물고 공부했고, 더 착한 딸이 되려 애썼다. 반에서 1등,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수능에서는 수석을 차지했다. 취업 후에는 매달 생활비를 제하고 남은 월급을 전부 집에 보탰다. 매해 어버이날이면 엄마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을 미리 알아내어 온 마음을 다해 선물했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해도 엄마는 나를 기억해주지 않았다. 오늘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부족했던 게 아니라, 애초에 엄마의 마음속에 내 자리는 없었다는 것을.

내 슬픔을 보이고 싶지 않아 야근이 있다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언니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걔가 무슨 불만이 있겠어? 그동안 이 집에 얹혀살면서 먹고 자고 한 생활비만 해도 사천만 원은 훌쩍 넘을 텐데!"

발걸음이 뚝 멈췄다.

뒤를 돌아보니 언니는 멸시와 비열한 미소로 가득 찬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편애를 받고 자란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막무가내인지 정말 모르는구나.

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받아쳤다.

"내가 집에 있었던 건 엄마 저혈당 쇼크 올 때 돌보려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나 매달 생활비로 백만 원씩 보냈어. 얹혀사는 게 아니라고."

언니는 코웃음을 쳤다. "말은 잘하네. 실제로 이체했는지 누가 알아?"

왈칵 치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안방에 있는 엄마의 가계부를 가지러 가려 했다.

"엄마는 모든 지출과 수입을 가계부에 기록하셔. 내가 거짓말을 하는지 보면 알겠지."

그때 내내 침묵하던 엄마가 다급하게 앞을 가로막았다.

"어머, 깜빡했네. 그 가계부 며칠 전에 잃어버렸단다."

그러면서 은근히 언니를 말렸다.

"네 동생이 생활비를 안 보냈어도 뭐가 문제겠니. 내가 엄마인걸. 자식한테 뜯기는 것도 다 내 팔자지."

날 위하는 척하면서도 은근히 내가 무임승차를 했다는 낙인을 찍는 교묘한 화법이었다.

언니는 기세등등해져 소리를 질렀다.

"당장 가계부 찾아내! 증거가 나오면 그 뻔뻔한 낯짝으로 어떻게 발뺌하는지 똑똑히 볼 테니까!"

하지만 막상 가계부가 눈앞에 나타나자, 언니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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