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녀는 이 사랑을 관두다제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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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노현재도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말했다.
“일이 힘들면 그냥 집에서 쉬어. 매일 지쳐있는 거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파. 정아야, 내가 너 하나 못 먹여 살릴까 봐 그래?”
송정아가 고개를 저으며 또박또박 대답했다.
“난 누구의 부속품이 아니야.”
노현재가 순간 멈칫했다.
“부속품이라니? 무슨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던 그녀가 그의 말을 가로챘다.
“오늘 왜 이렇게 일찍 왔어? 회사 안 갔어?”
“요즘 일이 너무 바빠서 너랑 시간을 못 보냈잖아. 오늘은 너랑 같이 있으려고.”
노현재가 찌푸렸던 미간을 풀고 다시 그녀에게 다정한 남자친구로 돌아갔다.
“뭐 하고 싶어? 양식 먹을래, 아니면 영화 볼래? 오늘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맞춰줄게.”
예전의 송정아였다면 이 말에 무척 감동했을 것이다.
노현재가 노강 그룹의 후계자라 매일 처리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런 그가 기꺼이 시간을 내어 그녀가 원하는 걸 함께 해준다는 건 적어도 그의 마음속에 그녀가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지금 노현재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일이 바빴던 걸까, 아니면 결혼 준비 때문에 바빴던 걸까? 대체 어떻게 다른 여자랑 결혼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나한테 사랑하는 사람이 나뿐이라고 거짓말할 수가 있지?’
그러나 송정아는 끝까지 그의 거짓말을 들춰내지 않았다.
어차피 며칠 남지 않았다. 때가 되면 송정아는 노현재의 인생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송정아가 고개를 저으며 노현재의 제안을 거절한 뒤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대청소나 같이 해줘. 집에 낡은 물건들이 너무 많아. 계속 둬봐야 쓸모도 없고.”
노현재가 흔쾌히 알겠다고 대답하고 오랫동안 함께 청소를 도왔다. 그러다가 정리가 끝나갈 무렵 송정아가 버리려고 빼놓은 물건들이 전부 예전에 두 사람이 함께 샀던 커플 아이템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머그잔, 액세서리, 옷, 슬리퍼 등 송정아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모두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버려지는 커플템이 늘어날수록 노현재의 얼굴에 떠오르던 미소도 점차 굳어졌다.
마지막 물건을 쓰레기통에 버린 그때 노현재가 마음속의 당혹감을 더 이상 숨기지 못하고 물었다.
“정아 너... 혹시 뭐 아는 거 있어?”
“내가 뭘 아는데? 나한테 숨기는 거라도 있어?”
송정아가 눈썹을 치켜세우고 노현재를 보면서 그의 질문을 교묘히 피해 되물었다.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던 노현재가 시선을 피했다. 한참을 침묵하다가 결국 정면으로 대답할 수 없어 그녀의 손을 꼭 쥐고 이렇게 말했다.
“정아야,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것만 기억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너야.”
송정아가 피식 웃기만 할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청소를 마친 후 노현재가 송정아를 데리고 데이트를 나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가 평소와 다른 점을 눈치챌까 봐 그녀는 더 이상 거절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함께 밥을 먹고 영화도 봤다. 그리고 차가 마지막으로 멈춰 선 곳은 어느 경매장 앞이었다.
막 입장하려던 그때 트위드 정장을 차려입고 정성스레 화장을 한 재벌가 아가씨가 그들을 향해 우아하게 걸어왔다.
노현재의 표정에 찰나의 어색함이 스쳐 지나간 걸 송정아가 바로 포착했다.
“왜 그래? 아는 사람이야?”
송정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자가 두 사람의 앞에 멈춰 서서 생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옆에 있던 노현재가 타이밍 맞게 소개했다.
“우리 집안이랑 대대로 친하게 지내는 집안의 딸이야. 안수진이라고 해.”
그러고는 잠시 뜸을 들인 뒤 송정아를 소개했다.
“이쪽은 내 여자친구 송정아.”
확연히 다른 온도 차에 안수진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하지만 이내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송정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현재 씨 여자친구가 엄청 예쁘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는데 오늘 직접 뵈니 역시나 명불허전이네요.”
바로 그때 전날 송정아의 면전에서 프랑스어로 그녀를 조롱했던 노현재의 친구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송정아가 보지 못하는 각도에서 노현재에게 눈을 깜빡였다.
노현재는 그제야 이 만남이 우연이 아니라 그들이 일부러 안수진을 데려온 거라는 걸 깨달았다.
속에서 분노가 들끓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성질을 내면 오히려 변명하기가 더 곤란해질 터. 결국 화를 꾹 억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경매장에서 안수진의 자리가 노현재의 바로 옆이었다.
도발적인 메시지를 보냈던 때와 달리 현실의 안수진은 상냥하고 교양이 넘치며 박학다식한 이미지였다.
노현재가 도자기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그녀는 그 분야의 주제를 주도하며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노현재 역시 처음에는 거리를 두는 듯하다가 점차 안수진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송정아가 헛기침한 뒤에야 노현재는 자신이 계속 그녀를 내버려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둘러 겉옷을 벗어 송정아에게 걸쳐주며 다정하게 말했다.
“추워? 이러면 좀 낫지? 네가 이런 쪽에 별로 관심 없는 거 알아. 혹시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그냥 번호표 들어서 낙찰받아.”
송정아가 입을 열기도 전에 노현재의 친구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긴 했지만 바로 한 줄 건너라 그들의 쑥덕거림이 고스란히 들렸다.
“현재가 송정아 체면을 제대로 살려주네. 그런데 관심 있으면 뭐 해? 쥐뿔도 모르는데. 아마 번호표 드는 법도 모를걸? 하하하.”
“당연히 모르지. 이런 상류층 경매장도 난생처음 와봤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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