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녀는 이 사랑을 관두다제1화
이 화는 약 2058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엄마, 아빠. 결정했어요. 돌아가서 가업을 이을게요.”
딸이 드디어 고집을 꺾자 수화기 너머의 송지창과 최윤경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신분을 숨기고 만난다는 딸의 남자친구가 떠올라 조심스레 물었다.
“남자친구도 같이 오는 거야? 네 정체를 아직 말 안 했지?”
“같이 안 가요. 헤어질 거예요.”
* * *
노현재 얘기가 나온 순간 송정아의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낮게 가라앉았다.
“일주일 후에 이곳을 정리하고 갈게요.”
몇 마디 더 나눈 뒤 송정아가 전화를 끊고 다시 룸으로 들어갔다.
룸 안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어 아주 북적거렸다. 송정아가 문을 열고 들어선 그때 시끌벅적하던 대화 소리가 잠시 잦아들었으나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곧장 노현재의 옆으로 가 앉았다.
노현재는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틈틈이 옆에 조용히 앉아 있는 송정아를 챙겼다. 그가 나른하면서도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야, 무슨 통화를 그렇게 오래 했어?”
송정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었다. 현장에 프랑스인이 단 한 명도 없었지만 끼어든 사람이 프랑스어로 말했다.
“노현재, 안수진이랑은 언제 결혼할 거야?”
그 말을 들은 순간 송정아가 손가락이 하얘질 정도로 들고 있던 술잔을 세게 움켜쥐었다.
노현재가 여전히 심드렁한 표정으로 송정아를 힐끗 쳐다봤다가 프랑스어로 대답했다.
“집안 어른들이 정해주셨어. 보름 뒤야.”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송정아에게 꽂혔다. 그중 한 명이 눈썹을 치켜뜨며 궁금증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안수진이랑 결혼하면 송정아는 어떡하고? 헤어지는 거야?”
“아니, 안 헤어져.”
노현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손에 든 술잔을 가볍게 흔들었다가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었다.
“결혼은 집안의 요구에 응하는 것뿐이야. 내가 사랑하는 건 정아밖에 없어.”
그 순간 룸 안이 웃음바다가 되었고 여기저기서 농담들이 터져 나왔다.
“현재 너 언제부터 이렇게 순애보였다고 그래? 신분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나는데도 진짜 마음을 준 거야?”
노현재가 고개를 돌려 송정아를 바라보았다. 식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애정이 서린 눈빛이었다. 한마디도 하지 않고 눈빛으로 답을 대신했다.
지독한 사랑꾼 같은 모습에 누군가 혀를 내두르며 신기해했다.
“진짜 사랑에 빠지긴 했나 보네. 그나저나 송정아 말이야. 정말 프랑스어 못 알아듣는 거 맞아?”
무심코 던진 질문인데 사람들이 갑자기 약속이라도 한 듯 폭소를 터뜨렸다.
“송정아네 집안 형편을 몰라서 물어? 외국어를 배울 돈이 어디 있었겠어? 절대 못 알아들으니까 걱정하지 마.”
사람들의 비웃음 소리가 귓가에 꽂혔다. 옆에 있던 송정아의 호흡이 미세하게 가빠지고 손가락 마디가 하얘질 정도로 술잔을 꽉 쥐었다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프랑스어를 아주 잘 알아듣는 걸 굳이 밝히지 않았다.
사실 송정아는 구박받는 신데렐라가 아니라 최고 재벌의 외동딸이었다.
지난 5년의 연애 기간 동안 노현재는 세상 누구보다 송정아를 아꼈지만 집안 어른들에게 단 한 번도 그녀를 소개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두 사람의 신분 차이 때문에 조심스러워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어쨌거나 노씨 가문이 가흠시에서 내로라하는 명문가였으니까.
그래서 송정아는 자신이 최고 재벌의 외동딸이라고 밝힐 계획이었다.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서 살기보다 스스로의 힘으로 부딪쳐보고 싶어 신분을 숨겼던 거라고 말이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 같은 일이 벌어졌다. 사흘 전 송정아가 노현재의 서재에서 청첩장을 발견했는데 신부가 안씨 가문의 딸이었고 신랑은 다름 아닌 노현재였다.
그녀와 사랑을 속삭이는 와중에도 그는 이미 집안의 정략결혼을 받아들인 상태였다.
한편으로 송정아를 ‘자기야’라 부르면서 달랬고 다른 한편으로 그의 집안과 어울리는, 그의 가족들이 인정한 여자와의 결혼을 서두르고 있었다.
그 순간 송정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앞으로 노현재는 결혼을 하고 송정아는 가업을 물려받으면 된다. 두 사람에게 찬란한 앞날이 펼쳐져 있었다.
술자리가 점점 무르익었고 사람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나눴다. 밤이 깊어지고서야 술자리가 끝이 났다.
송정아가 사람들을 따라 룸을 나섰다. 그런데 몇 발자국 떼기도 전에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아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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