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에서 마주한 남편과 첫사랑제2화
이 화는 약 3159자. 본 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는 2화 미리 읽기 중 마지막 화입니다. 이어지는 제3화부터는 공식 앱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알고 보니 기연훈은 나와는 완전히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다.
‘왜 화를 내는 건지 도통 모르겠네.’
나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응, 맞아.”
기연훈은 뭔가 화를 내고 싶었지만 속으로 참는 것 같았다.
“이번 시상식에서 당신이 속상했을 거 알아. 하지만 배 속의 아이를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 건 아니잖아.”
그 말에 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나는 이 업계에서 8년을 버텼다. 여우주연상 후보에만 5번이나 올랐고, 겨우 이번에 확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기연훈은 류만정을 위해 내가 받을 상을 빼앗아줬다.
덕분에 류만정의 팬들에게 ‘광대’라며 조롱당했고,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영원한 들러리’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화풀이한 거 아니야. 어차피 우리는 이혼할 거고, 그럼 애는 굳이 낳을 필요 없잖아. 이혼 서류는 이미 준비해뒀어. 내일 변호사가 가져올 테니까 사인만 해줘.”
기연훈은 원래 내 앞에서 인내심이 길지 않은 성격이었다.
이번에도 남자의 목소리엔 짜증이 섞여 있었다.
“겨우 여우주연상 하나 때문에 이러는 거야? 그게 그렇게 갖고 싶으면 내년에 받으면 되잖아. 나머지 얘기는 당신이 진정되면 다시 하자.”
내가 아이를 지운다고 했고, 이혼 얘기까지 꺼냈는데도 기연훈은 사과 한마디 없이 차 키를 챙겨 집을 나섰다.
늘 그랬던 것처럼, 내가 어떤 상처를 받든 그는 나를 내버려 두고 내가 스스로 감정을 추스르길 바랐다.
‘어차피 얼마 안 가면 내가 또 먼저 가서 화해를 청할 거라고 생각하겠지.’
그는 그렇게 믿었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부모님을 어린 나이에 여의고, 언니와 단둘이 서로 의지하며 살았다.
언니가 신장병에 걸렸을 때, 기연훈의 어머니가 수술비를 대주셨고 내 학비까지 지원해주셨다.
‘어머님께 감사했어. 그래서 어머님의 부탁으로 연훈이를 돕겠다고 했던 거야.’
기연훈의 어머니는 말했다.
“10년 뒤에도 네가 연훈이와의 결혼 생활에 마음이 없다면, 그땐 내가 더 이상 강요하지 않을게.”
그리고 이제, 약속한 10년이 지나갔다.
다음 날 아침, 변호사가 이혼 서류를 가져왔다.
나는 기연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아서 전자 문서로 이혼 서류를 보내며 메시지를 남겼다.
[한번 확인해보고 문제 없으면 돌아와서 사인해줘.]
메시지를 보낸 뒤, ‘읽지 않음’ 표시가 계속 떠 있었다.
‘역시 또 나를 차단했구나.’
그는 기분이 나쁘기만 하면, 심지어 자기 잘못으로 사이가 틀어졌어도 나를 차단해버리곤 했다.
그리고 늘 내가 먼저 숙이고 들어가 화해하길 바랐다.
‘늘 그랬으니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정말 짜증난다. 그래도 곧 이혼하니까 더는 참지 않아도 돼!”
나는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하지만 그 후로 사흘간, 기연훈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대신, 류만정과 함께 쇼핑몰을 다니거나 레드카펫을 밟는 모습이 계속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사람들은 두 사람이 곧 결혼할 거라며 떠들어댔다.
나흘째 되는 날, 나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그래서 기연훈의 생일 파티에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이 생일 파티는 기연훈과 류만정의 친구들만 초대해, 그가 소유한 별장에 모여 있었다.
...
문을 열고 들어서자, 파티장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봤다.
류만정이 가장 먼저 참지 못하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결국 더 못 기다리고 왔네?”
다른 사람들도 비웃음을 덧붙였다.
“만정이가 그러던데, 지은서가 이혼을 빌미로 기 대표님께 몇 개 좋은 작품 밀어달라고 했대.”
“근데 기 대표님이 신경도 안 쓴다며?”
“그러니까. 근데 저렇게 급하게 찾아온 거 보니까, 이혼당할까 봐 겁나서 뛰어온 거겠지?”
“...”
“연훈 형에게는 만정이밖에 없잖아. 지은서는 맨날 연훈 형한테 매달리면서, 어른들 눈치 때문에 겨우 결혼한 거잖아. 내가 지은서라면 조용히 살겠다. 저렇게 까불다가 쫓겨나는 건 시간문제지.”
‘역시 류만정 친구들은 류만정의 편을 들 거고, 기연훈의 친구들은 기연훈의 태도를 보고 날 우습게 여기는 거지.’
나는 말싸움을 할 생각은 없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기연훈 어디 있어?”
그때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너 여기로 불렀어?”
돌아보니 기연훈이 날 노려보며 섰다가, 곧장 류만정의 옆으로 걸어가니, 주변에서 몇몇이 휘파람을 불며 분위기를 부추겼다.
‘모두들 나를 조롱하려고 기다리고 있었구나.’
나는 주변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기연훈을 향해 말했다.
“할 얘기가 있어.”
기연훈은 스타엔터테인먼트의 대표로, 그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회사 이미지와 주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나도 회사의 대주주 중 하나였기에, 서로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 사람들 앞에서 감정적으로 행동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기연훈에게는 체면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여기서 하면 되잖아. 혹시 이혼한다고 큰소리치고 나가더니 벌써 후회돼서 화해라도 하자고 오는 거면, 그럴 필요 없어.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당신의 말도 안 되는 이 행동을 참아줄 거야.”
‘참아준다고? 내가 이런 사람의 체면을 지켜줘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나는 후회 안 해.”
나는 가방에서 이혼 서류를 꺼내 그의 앞에 내밀었다.
“사인해.”
기연훈은 서류를 받아보지도 않고 냉랭한 얼굴로 나를 쏘아봤다.
“사인해주면, 이혼숙려기간에 또 나타나서 난리 칠 거지? 지은서, 난 당신이 어린 애들처럼 장난하는 거에 시간 낭비할 만큼 한가하지 않아.”
‘정말 지긋지긋하다. 이 끝없는 자만심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야?’
나는 진저리가 난다는 듯 말을 이었다.
“걱정 마. 당신의 모든 추측은 내가 당신을 좋아한다는 전제하에 성립되잖아. 그런데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당신 옆을 맴돈 건, 그저 당신 어머니께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였어.”
나는 숨을 고르고,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이제 약속했던 10년이 지났어. 나는 앞으로 절대 당신과 엮이지 않을 거야. 당신도 내가 싫겠지만, 나도 당신과 류만정에게 질렸어. 정말로. 당신은 결혼 생활 중에 아무렇지도 않게 불륜을 저지르고, 아내인 나한테는 냉담하게 굴었잖아. 그런 당신을 내가 좋아하길 바라는 건 무리 아닌가?”
나는 있는 그대로 솔직히 말했으니, 기연훈은 이제야 서류에 사인할 거라 생각했다.
어차피 기연훈이 좋아하는 여자는 류만정이고, 나에게 아내로서의 정을 느낀 적도 없으니, 바로 사인하고 끝낼 거라 믿었다.
하지만 내가 한마디 할 때마다, 남자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믿기지 않는다는 건가? 아니면 무언가 두려운 게 있는 건가?’
마지막엔 기연훈의 시선이 마치 날 삼킬 듯 날카로웠다.
‘지금 뭐야... 화난 거야? 아니면 불안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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