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타에서 주인공으로제1화
이 화는 약 2634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10년 동안 만나온 남자친구랑 드디어 부부로 되던 날이었다.
결혼식 당일, 남자친구의 첫사랑이 찾아와 나 대신 신부 자리에 앉겠다고 했었다.
나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의 결혼반지를 끼꼬서 그녀는 세상 아련한 모습으로 나의 남자를 넘봤었다.
“이현 언니, 저 많이 아파요.”
“언니는 앞으로 평생 오빠 곁에서 행복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 제발 결혼식만은 저한테 양보해주세요.”
그 소리를 들은 남자친구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편을 들었었다.
“소이현, 욕심 좀 그만부려! 나랑 혼인신고도 하고 내 아이까지 품고 있잖아! 그 많은 걸 얻고서 결혼식 하나쯤은 양보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적나라한 하객들의 손가락짓까지 신부인 난 모두의 웃음거리가 되어버렸었다.
하지만 난 눈물 하나 흘리지 않고 덤덤하고 너그러운 모습을 보였었다.
아이를 지우겠다고 산부인과에 예약을 하고나서 난 남친의 첫사랑을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결혼식도 10년 동안 쓰다 남은 쓰레기도 너한테 다 줄게.”
* * *
“소이현! 너 미쳤어!”
박지현의 손만 잡고 있던 나의 남자친구인 이정훈은 마침내 그 손을 놓고서 나를 잡아당기려고 했다.
다가오는 정훈을 바라보면서 난 주저없이 그를 향해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정훈은 믿어지지 않는 듯 얼굴을 부여잡고서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치맛자락을 살포시 들고서 지현은 바로 정훈에게 다가가 그를 확 끌어안았다.
여린 몸이지만 자기 힘으로 자기 남자를 지키겠다는 듯한 의지를 보이면서.
이윽고 지현은 연약한 모습으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현 언니, 이제 그만 화 좀 푸세요. 우리 오빠 제발 그만 때려요.”
“결혼식도 웨딩드레스도 언니한테 돌려줄 테니 제발 그만 하세요. 저 그냥 홀로 외로이 죽을게요.”
마음과 전혀 다른 말을 내뱉으면서 지현은 입고 있던 웨딩드레스를 벗으려고 했다.
그러자 정훈이 그런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
“지현아, 이 웨딩드레스의 주인은 처음부터 너였어. 결혼식의 주인공도 오직 너 하나뿐이었고.”
지현의 웨딩드레스를 꼼꼼히 정리해주면서 정훈은 부드럽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형적인 첫사랑의 이미지에 걸맞은 지현은 같은 여자가 봐도 청순하고 예뻤다.
맞춤 제작이라도 한듯한 웨딩드레스까지 입고 있는 지현은 ‘빛’ 그 자체였다.
‘저 웨딩드레스는 내 것인데 왜 쟤한테 어울리는 걸까?’
난 문득 웨딩드레스를 피팅하던 그날이 생각났다.
그날, 난 사이즈가 맞지 않아서 여러 곳을 수선보려고 했으나 정훈은 맞춤제작한 웨딩드레스라 그럴 수 없다고 했었다.
‘그런 거였구나... 처음부터 박지현을 위한 웨딩드레스였어...’
어느새 나의 입가에 차가운 웃음이 새어 나왔고 그 모습을 정훈이 보게 되었다.
“소이현, 이제 마음에 들어? 우리 지현이를 이렇게까지 몰아세워야 네 속이 시원하겠어?”
“네 뱃속에 있는 아이부터 생각해! 아빠 없이 키우고 싶지 않으면 늘 그래왔듯이 순순히 말 들어!”
순간 결혼진행곡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두 화동이 꽃가루를 뿌리면서 두 사람 앞으로 꽃길을 깔아주었다.
모두가 주목하는 가운데 정훈은 그렇게 지현의 손을 잡고서 ‘꽃길’을 걸었다.
행복을 상징하는 피아노 소리가 들려올 때쯤, 난 산부인과에 예약 전화를 걸었다.
아이를 지우겠다고...
행복으로만 가득 찬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하객들은 나한테 손가락짓을 했다.
마치 내가 불청객인 것처럼 말이다.
사회자 앞에 서게 된 두 사람은 서로에게 평생을 약속했고 난 하객들의 시선이 너무 따가워서 처량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도망쳐나왔다.
허겁지겁 뒤돌아서서 뛰쳐나가려고 하던 그때 난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나의 가족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오늘의 신부가 내가 아닌 지현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놀라움이 일도 없었다.
심지어 내 동생은 무대로 올라가서 칭찬을 서슴치 않았다.
“여러분, 이렇게 화려하고 사랑이 넘치는 결혼식은 처음이죠? 역시 우리 매형!”
마치 무대 위에 있는 지현이야말로 자기 누나인 것처럼 말이다.
무대에서 내려온 동생은 내가 보이지 않자, 바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누나, 당장 돌아와. 매형 창피하게 하지 말고. 별것도 아닌 것으로 왜 그렇게 유난이야? 어차피 혼인신고는 누나랑 한 거잖아.]
[얼른 와서 매형한테 진지하게 사과해. 다음 달에 매형이 새 차로 뽑아준다고 약속했단 말이야. 계약서까지 다 체결한 상황인데, 매형이 누나 때문에 화나서 계약금 주지 않으면 나 진짜 끝이야!]
순간 난 가슴이 쥐어뜯기는 것만 같았다.
떨리는 속으로 겨우 키보드를 누르면서 답장을 보냈다.
[내가 그동안 매달 용돈 보냈잖아. 근데 왜 그 비싼 걸 정훈한테 사달라고 한 거야?]
돌아오는 답장은 아무리 기다려도 없었지만 아빠와 엄마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물론 다짜고짜 욕부터 들려왔다.
[내가 너 같은 걸 낳고 미역국을 마셨다니! 넌 대체 양심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동생이 큰 걸 바란 것도 아니고 그깟 차 좀 뽑겠다는 데 순순히 협조 못 해? 돈 많은 시댁으로 시집간다고 좋아했건만 그딴 짓이나 펼치고 말이야! 나도 참 쪽팔려서! 너 때문에 내가 살 수가 없어!]
아빠와 엄마의 욕설 속에서 난 마침내 알게 되었다.
돈만 밝히는 여자라고 시어머니께서 나한테 늘 인상만 쓰셨던 그 이유를.
‘그런 거였어... 내 가족이 나를 팔아 넘긴 거였어...’
모든 퍼즐이 맞추어지는 순간 난 온몸이 나른해지고 말았다.
예식장 밖에 있는 계단에 힘없이 주저앉아버렸다.
아빠와 엄마는 마음껏 욕설을 퍼붓고 난 뒤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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